2020-현재
2024. 11. 24 | 안정열 부목사 부임. |
2024. 10. 27 | 새성전 봉헌예배를 드리다. |
2024. 10. 06 | 임성진 수련목회자가 사임하고 김건호 전도사가 부임하다. |
2024. 09. 15 | 새성전 입당예배를 드리고 표지석 제막식을 하다. |
2023. 08 .20 | 본당 건축 기공예배를 드리다. |
2023. 08. 17 | 남양리 612번지 건축허가완료 |
2023. 08. 01 | 본당 건축을 위한 시공사로 지우종합건설㈜를 선정후 도급계약완료 |
2023. 07. 25 | 건축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 개최 |
2023. 04. 19 | 신근범 수련목회자가 목사안수를 받다. |
2023. 04. 18 | 김진석 담임목사 남양지방회 감리사 이임 |
2023. 02. 20 | 본당 건축을 위한 설계사로 ㈜아벨건축사사무소를 선정후 설계계약 완료 |
2023. 02. 12 | 제 44회 남양지방회에서 김종대 장로, 이성관 장로가 신천 장로가 되다. |
2023. 02. 12 | 제 44회 남양지방회에서 차재천 장로, 차명자 장로가 은퇴하다. |
2022. 11. 15 | 신근범 전도사가 수련목회자로 부임하다. |
2022. 9. 25 | 김성민 부목사 사임 (재임기간 2년 3개월) |
2022. 9 | 남양시장로 25번길 11 387평 부지를 매입하다. |
2022. 8. 1 | 성전을 이전하다.(남양시장로 25번길 11) |
2022. 7. 31 | 남양시장로 43번지 부지를 매각하다. |
2022. 4 | 김진석 담임목사 남양지방 감리사 취임 |
2021. 8. 15 | 남양읍 남양성지로 8-5번지 우림아파트 1108호 부목사 사택을 구입하다. |
2020. 12. 13 | 남양리 611번지 외 3필지 200평 교육관 200평 준공(입당예배) |
2020. 12. 6 | 임성진 전도사 부임 |
2020. 10. 25 | 박진욱 수련목 전도사 사임(재임기간 2년 7개월) |
2020. 06. 28 | 김성민 부목사 부임 |
2020. 05. 31 | 김민규 부목사 사임(재임기간 1년 7개월) |
2020. 5. 24 | 남양리 611번지 외 3필지 200평 교육관 기공예배를 드리다(화성시 건축허가 취득) |
2010-2019
2019. 4 | 차재천 장로 장로회 경기연회 연합회장 이임하다. |
2018. 12.16 | 김민규 목사가 부담임목자로 부임하다. |
2018. 3. 25 | 박진욱 전도사가 수련목회자로 부임하다. |
2018. 4. 6 | 장모세 수련목회자가 목사안수를 받다. |
2018. 1. 14~현재 | 제34대 김진석 목사가 부임하다. |
2017. 9. 17~12. 31 | 황선영전도사가 아동부 교회학교를 담당하다(재임기간 3개월) |
2017. 4. 22 | 차재천장로가 장로회경기연회연합회장으로 취임하다. |
2017. 4. 9 | 건축위원회가 개편되다. 위원장에 차재천 장로가 임명되다. |
2017. 3. 1 | 제98회 삼일절 기념식을 이필주목사 기념비문 앞에서 개최하다. |
2017. 2. 19 | 제38회 남양지방회에서 김성욱, 김옥남 장로가 은퇴하다. |
2017. 2. 14 | 차재천 장로가 장로회 경기연회 연합회 제12대 회장으로 당선되다. |
2017. 1. 22 | 건축위원회가 구성되다. 위원장에 차명자 장로가 임명되다. |
2016. 12. 18 | 2016년 당회에서 성전건축 변경을 결의하다. |
2016. 11 ∼ 2018. 1. 7 | 제33대 홍성현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1년 2개월) |
2016. | 이수인장로, 이경영장로가 영광교회로 이명되다. |
2016. 8. 3 | 남양리 613번지 외 4필지에 1,327평 규모의 성전건축 허가를 받다. |
2016. 7. 14 | 홍진국 원로장로가 별세하다. |
2015. 3 ∼ 2017. 3. 26 | 이윤성 전도사(부분근무)가 아동부 교회학교를 담당하다(재임기간 2년). |
2015. 3 ∼ 2017. 9. 10 | 한성일 목사가 제3대 부담임자로 부임하다(재임기간 2년 6개월). |
2015. 2 | 장모세 전도사가 수련목회자로 부임하다.(재임기간 3년) |
2014. 2 | 제35회 남양지방회에서 차명자, 김근태 장로가 신천장로 되다. |
2014. 2. | 제35회 남양지방회에서 홍진국 장로가 은퇴하다. |
2013. 3. 9 | 남양동 557번지에 968.33평 규모의 성전건축 설계를 세진건설사무소와 계약하다. |
2013. 2 | 김옥남장로가 제34회 남양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
2012. 4 ∼ 2016. 10. 31 | 제32대 이병칠 목사가 부담임자로 시무하다가 담임자로 취임하다(재임기간 4년 6개월). |
2012. 4. | 임홍만 목사가 제23회 경기연회에서 정년 은퇴하고 남양교회 제3대 원로목사가 되다. |
2012. 4. 21 | 남양감리교회 115년사가 발간되다. |
2012. 1 | 필리핀 빨리빠노교회 교육관을 건축하고 봉헌하다. |
2011. 2 | 제32회 남양지방회에서 이수인장로 신천장로가 되다. |
2010. 12. | 홍성덕 원로권사가 명예장로가 되다. |
2010. 12. | 제1회 노인대학 졸업생을 배출하다. |
2010. 10. 11~16 | 임홍만 목사가 사마리아선교회가 주최하는 필리핀 전도 집회 주강사로 집회를 인도하다. |
2010. 3. 1 | 이필주 목사 기념비 앞에서 삼일절기념 행사를 드리며 삼일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다. |
2010. 2. 26 | 제32차 감리교 부흥단 정기총회에서 임홍만 목사가 부흥단장으로 취임하다. |
2000-2009
2008. 2 | 제29회 남양지방회에서 이순상 장로가 은퇴하다. |
2007. 3 | 남양교회 노인대학이 개교되어 7개 반을 3년 교육과정으로 운영하다. |
2007. 3∼2012. 4 | 제31대 임홍만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5년 1개월) |
2007. 2 | 제28회 남양지방회에서 김정두 장로가 은퇴하다. |
2007. 2 | 제28회 남양지방회에서 김호철 장로가 신천 장로가 되다. |
2006. | 남양교회 창립 109주년 및 기념 성령강림절 성회를 개최하다(강사 김인중 목사) |
2006. 4 | 제17회 경기연회에서 김정두 장로가 25년 근속 표창을 받다. |
2006. 2. 16 | 독립운동가 이필주 기념 사업회를 시작하여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다. |
2005 | 푸드뱅크, 필리핀 단기 선교 실시하다. |
2005. 11. 25 | 외국인 노동자 문화 한마당을 개최하여 필리핀 노동자선교를 시작하다. |
2005. 8. 8~10 | 전교인 수양회가 수례포 해수욕장에서 개최되다. |
2005 .6. 26 | 이필주 목사 기념 사업일환으로 필사회봉사단 창단 예배드리다. 필 행복한 책나무 어린이 도서관을 설립하다. |
2005. 3 | 신경하 감독회장이 남양교회 방문하다. |
2005. 3. 6 | 미국연합감리교회 김해종 감독 초청 예배드리다. |
2004. 6. 12~19 | 이필주 목사 기념사업 일환으로 필 거리 농구대회를 개최하다. |
2004. 3 ∼ 2012. 4 | 이병칠 목사가 제2대 부담임자로 부임하다(재임기간 8년 1개월) |
2003. 11. 30 ∼ 2007. 3 | 제30대 공기현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3년 4개월). |
2003. 4 23∼29 | 미주 한인감리교회 이민 선교 100주년 기념대회에 호명현 목사, 김정두 장로, 이순상 장로, 홍진국 장로, 김성욱 장로가 참석하다. |
2003. 4. 4 | 정윤태 목사가 제14회 경기연회에서 자원은퇴하다. 이로써 남양교회에서 제2대 은퇴한 원로 목사가 되다. |
2002. 1 ∼ 2003. 11 | 호명현 목사가 제1대 부담임자로 부임하다.(재임기간 1년 10개월). 호명현 목사는 정윤태 목사가 자원은퇴하고 그 후임자로 내정하여 미리 부임해 왔으나 정윤태 목사가 자원은퇴한 후에도 담임자로 취임을 하지 못하고 부담임자 자격으로 담임목회를 하다. |
2001. 9. 9 | 건축대지 관련된 빚 청산하고 건축 헌금을 종결하다. |
2001. 4. 16~30 | 정윤태 목사 부부가 바울전도여행지 성지순례 다녀오다. |
1900 ~1999
1999. 2 | 이경영 장로와 김성욱 장로가 제20회 남양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
1998. 2 | 홍진국 장로가 제19회 남양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
1998. 2 | 오죽순 장로가 제19회 남양지방회에서 은퇴를 하다. |
1996. 6 | 성전건축 대지를 남양리에 1500평을 매입하고 건축헌금 시작하다. |
1995. 9. 18~30 | 정윤태 목사 부부가 이스라엘 성지순례 다녀오다. |
1994. 8 ∼ 2003. 4 | 제29대 정윤태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8년 8개월). |
1994. 8 | 이인환 목사가 재임 중에 별세하다. |
1993. | 이필주 목사 기념 비석을 새 것으로 교체하다. |
1993. 9. 16 | 성전건축 부채를 다 갚고 성전 봉헌 및 차재천장로 취임예배를 드리다. |
1993. 9 | 이덕근 장로가 별세하다. |
1991. 5. 23 | 100주년 기념교회 설립을 위해 화성군 마도면 해문리 327번지1 토지633평을 매입하다. |
1990. 7 ∼ 1994. 8 | 제28대 이인환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4년 1개월). |
1990. 2 | 차재천 장로가 제11회 남양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
1989. 3 | 제2회 복음영농학교 개최하다. |
1988. 7 | 복음영농학교를 갸최하다.김일호 권사가 암 투병 끝에 별세하다. |
1988. 3 | 제1회 복음영농학교 개최하다. 김호일 권사가 주관하다. |
1987. 12 ∼ 1990. 7 | 제27대 김광수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2년 7개월). |
1987.4 | 주보를 개편하여 4면에서 8면으로 증면하다. |
1986. 12 | 강인호 목사 당회에서 신임투표 실시하여 97% 찬성을 받다. |
1986. 10 | 강인호 목사가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투옥되다. |
1986. 3 | 이필주목사 기념 특별 예배드리다. KBS에서 녹화하여 전국에 방영하다. 이필주 목사 후손들에게 금일봉 전달하다. |
1985. 7 ∼ 1987. 12 | 제26대 강인호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2년 5개월). |
1984. 4 | 김영수 목사 중부연회 총무로 당선되다. |
1982. 4. 7 | 기공식을 개최하고 1983년에 완공되다. |
1982. 2. 25 | 성전이 폭설로 붕괴되다. |
1982. 2 | 한영학 이순상 장로가 제2회 남양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
1981. 1 | 남양교회가 주최하여 연날리기 대회를 개최하다. |
1981. 2 | 김정두, 육덕미 장로가 제2회 남양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
1980. 3 | 제1회 남양지방회가 조직되다. |
1979 | 성전(40평)을 60평으로 증축하다. |
1978. 10 ∼ 1985. 6. 30 | 제25대 김영수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6년 8개월). |
1973. 2 | 이덕근 장로가 수원서지방회에서 신천장로 되다. |
1972. 5 ∼ 1978. 9 | 제24대 김원길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6년 4개월). |
1969. 4. 21 | 허숙일 목사가 비봉에 개축한 이필주 목사 기념비와 양노리에 있던 이필주목사 기념비를 삼일절 50주년을 기념하여 허숙일 목사가 중심이 되어 남양교회 앞에 나란히 세우다. |
1969. 4 ∼ 1971. 4 | 유흥춘 목사가 제4대 수원서지방 감리사를 역임하다. |
1967 | 백합유치원 설립하다. |
1967. 4 ∼ 1972. 3 | 제23대 유홍춘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4년 11개월) |
1965. 4 ∼ 1967. 4 | 제22대 전병권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2년) |
1965. 2 | 윤중석 장로와 그의 아들인 윤석태 장로가 수원서지방회에서 신천 장로가 되다. |
1961. 4 29 | 성전건축하고 봉헌하다. 양준택 목사는 홍승하 목사 때 지었던 교회 터를 팔았다. 제하여학교 자리였다가 이필주목사 때부터 유치원 자리였던 현재 남양동 557번지에 성전을 신축하였다. 교회 분열시 설립된 남양장로교회 교인들과 합하다. |
1960. 12 | 홍사필 장로가 수원서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
1960. 3 ∼ 1965. 4 | 제21대 양준택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5년 1개월). 재임기간 중 감리사를 역임하다. |
1959. 3 ∼ 1960. 3 | 제20대 고원휘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1년) |
1956. 5. 1 | 김순경 목사 측이 세상 법정에서 패소하다. 단기 4288년 민제 2017회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 김순경, 동 안상현 동 윤병수 동 윤신애는 원고에 대하여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남양리 586번지 1호 기독교 대한감리회 남양교회에서 예배를 금함”이라 판결됨에 따라 김순경 목사는 남양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할 수 없게 되었다. |
1956. 3∼1959. 3 | 제19대 방부신 목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3년). 총리원측은 김연호 목사의 후임으로 방부신 목사를 파송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남양교회는 김순경 목사와 방부신 목사의 갈등으로 심각한 분열 상태에 이르게 되다. 서로 간의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다. 호헌파 김순경 목사 측은 교회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총리원 방부신 목사 측은 교회 주변의 조선 시대 감옥 터에 텐트를 치고 예배를 드리다. |
1956 | 남양교회가 분열되어 안상현 장로(당시 남양국민학교교사)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이 남양장로교회(담임유장은목사)를 세우다. 이때 남양면장이던 정영덕성도는 천주교회로 나가다. |
1956. 2 | 김현준 장로가 수원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
1955. 8. 25 ∼ 1956. 3 | 제18대 김연호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7개월). 호헌파에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던 김순경 목사가 호헌파에 가담함으로써 총리원에서는 김연호 목사를 남양교회에 파송하였다. 이로써 교회 분열이 시작되어 김순경 목사를 지지하는 호헌파와 김연호를 목사를 지지하는 총리원파로 나누어졌다. 한 교회에 두 명의 담임자가 부임하게 되다. |
1955. 3. 1 | 유형기 감독의 선출은 자격에 문제가 있으므로 장정에 따라 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제7회 총회를 부정하고 천안읍제일교회에서 전국신도대회를 개최하여 특별총회를 열어 김응태 목사를 감독으로 선출하여 호헌파가 조직되다. 호헌파는 감리교회 내에서 소외되던 충청도 출신의 목회자들 중심으로 결성된 정치 조직이다. |
1955. 2 | 조성순 장로가 수원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
1954. 3. 18∼21 | 제7회 총회가 정동제일교회에서 개최되어 유형기 목사를 감독으로 선출하다. |
1954. 2 | 이영발 장로가 수원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
1953. 12. 10 | 박영석 목사 은퇴치하기념예배 드리다. 수원지방과 남양교회 합동으로 이 예배를 주최하였다. 박영석 목사는 남양교회에서 처음으로 은퇴한 목사가 되다. |
1953. 7. 31 | 한국전쟁이 휴전되다. |
1953. 3 ∼ 1958. 3 | 제17대 김순경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5년). |
1953. 3 | 박영석 목사가 중부연회에서 은퇴하다. 남양교회에서 최초의 은퇴 목사가 되다. |
1953 | 한국전쟁으로 무너진 예배당을 교인들과 함께 재건하다. |
1950. 6. 25 | 동족상잔의 비극전(悲劇戰)인 한국전쟁이 발발하다. |
1949. 2 | 안상현 장로가 수원지방회에서 신천장로가 되다. 남양교회 제2대 장로다. 일제 강점기에 초대장로가 된 김장문 장로가 연안감사소장으로 전근 감에 따라 세워진 안상현은 남양교회 설립교인이며 전도부인이자 제하여학교와 보흥여학교 교사였던 안이리사벳의 아들로 대를 이어 장로가 되었다. |
1946. 9 | 이필주 목사 기념 비문을 세우다. |
1946. 4 ∼ 1953. 3 | 제16대 박영석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6년 11개월). |
1945. 8. 15 |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배 하에서 해방되다. |
1944. 4 ∼ 1946. 4 | 제15대 허숙일 전도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2년). 1947년에 중부연회에서 목사안수 받다. |
1942. 5 ∼ 1944. 4 | 제14대 홍순관(洪淳寬) 목사가 부임하다(재임기간 1년 11개월).이때는 홍순관 목사는 주관자로 임명을 받았다. 1941년에 일제가 종교단체법을 제정할 때 감독을 통리사로, 감리사를 교구장으로, 목사를 교사로, 담임목사를 교회 주관자로 개칭됨에 따라 기록된 것이다. |
1934. 4 ∼ 1942. 4. 21 | 제13대 이필주 목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8년). 당시 남양교회는 담임자가 미파상태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들이 힘을 잃어가고 오산과 사강을 제외하고는 자치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양교회 재건을 위해 연회에서는 1934년에 은퇴한 이필주 원로목사를 파송했다. 그는 1942년 4월 21일에 별세하기까지 남양교회 담임자로 섬겼다. |
1933. 4 ∼ 1934. 4 | 제12대 박영석(朴暎錫) 목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1년 1개월). |
1928∼1930 | 수원지방의 대기근으로 사강지방이 자립하기 어려워지자 남양교회와 통합되다. |
1928. 10 ∼ 1933. 4 | 제12대 홍순호 목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4년 5개월). |
1927. 6 ∼ 1928. 10 | 제11대 김교철(金敎哲) 전도사가 1927년 장로목사 안수 받고 재임명 되다(재임기간 1년 2개월). |
1926. 12. 26 | 예배당 신축하다. |
1925. 6 ∼ 1927. 6 | 제10대 방훈(方薰) 목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1년). |
1919. 11 ∼ 1925. 6 | 제9대 임응순(任應淳) 목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4년 7개월). |
1918. 6 ∼ 1919. 3 | 제8대 동석기(董錫琪) 목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9개월). |
1916. 3 ∼ 1918. 6 | 제7대 김교철(金敎哲) 전도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2년 3개월). |
1913. 6 ∼ 1916. 3 | 제6대 이창희 목사가 재임명받고 부임하다 (재임기간 3년). |
1913 | 해군동구 영화인면 원막동에 교회 설립하다. |
1910. 8. 29 | 일제에 의해 한일병탄이 되다. |
1910. 5 ∼ 1913. 6 | 제5대 김광식 전도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3년 1개월). |
1909. 12. 21 |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다. |
1907. 4 ∼ 1910. 5 | 제4대 이창회 목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3년 1개월). |
1909. | 홍승하 전도사가 연환회에서 집사목사(준회원)안수 받고 1912년에 장로목사(정회원) 안수를 받다. |
1906. 6 ∼ 1907. 4 | 제3대 김우권 전도사가 부임하다 (재임기간 10개월). |
1905 | 남양 읍내에 6칸짜리 새 예배당 건축하다. |
1904 | 남양리 586번지에 예배당을 신축하다. |
1904. 2. 18 ∼ 1905. 7 | 홍승하 전도사가 하와이 그리스도한인연합교회 초대담임자로 부임하다. |
1904. 2. 8 | 러일전쟁이 발발하다. |
1903. 10 ∼ 1906. 6 | 제2대 박세창 권사가 부임하고 1904년 11월에 전도사 직첩을 받다.(재임기간 2년 8개월) |
1903. 10 | 홍승하 전도사가 하와이 이민 노동자를 위한 선교사로 파송 받다. |
1903. 5. 1 ∼ 1903. 10 | 홍승하 권사가 정동제일교회에서 개최된 제19차 선교연회에서 전도사 직첩을 받고 남양교회 제1대 담임자가 되다.(재임기간 5개월) |
1903. 5. 1 | 케이블(E.M. Cable) 선교사 남양구역 담당하다. |
1903. 3. 3 | 제2차 하와이 이민자 카틱호를 타고 호놀룰루에 도착 카후쿠 농장에 정착하다. |
1903. 1. 13 | 제1차 하와이이민자 갤릭호를 타고 호놀룰루의 오하우 섬 와이알루아 농장에 정착하다. |
1902. 10 | 남양구역 계삭회가 개최되고 케이블(E.M. Cable) 서지방 감리사가 안식년 중에 있던 존스선교사를 대행하다. |
1902. 3. 6 | 남양구역 최초의 계삭회가 개최하다. |
1901. 9 ∼ 1903. 4. 30 | 홍승하 속장이 남양교회 권사(勸師)로 임명받다. (당시 권사는 교역자 직책 중 전도사 전) |
1901. 1 | 홍승하가 남양속회 속장으로 임명받다. |
1900. 12. 25 | 홍승하가 존스 선교사의 집례로 세례를 받다. |
1900 | 제물포구역 남양속회가 조직되다. |
1894-1985
1985. 10. 8 | 을미사변(음 8월 20일) 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다. |
1894. 8. 15 | 남양교회 설립자 존스(G.H. Jones, 趙元時) 선교사.당시 남양은 제물포구역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복정채 권사가 순회하다. 이 시기에 남양구역 신앙공동체가 형성되다. 그동안에는 향토역사학자이자 남양교회 초대 담임자인 홍승하 목사의 친족인 홍승길 씨의 ‘남양교회역사’에 근거하여 1987년 4월 7일을 창립일로 기념해 왔다. 그러나 1965년 통계표에 1894년 8월 15일로 표기된 것을 근거로 하여 2016년부터 창립일을 변경하다. |